
샤궈는 기타와 음악을 사랑하는 시각장애인 브이로그 크리에이터이자, 안내견 유바오의 새내기 형이며, 빌리빌리 2024년 최우수 작품상 수상자입니다.
그는 활발한 성격은 아니지만 늘 긍정적입니다. 프로필에 적힌 한 줄처럼 — “햇빛이 눈동자에는 닿지 않아도 마음에는 닿을 수 있다” — 그의 영상은 언제나 치유의 힘을 전합니다.
오늘은 샤궈와 기타의 이야기를 통해,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이 친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샤궈가 처음 기타를 만난 것은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고입 시험을 마치고 집에서 게임만 하자, 가족들은 컴퓨터만 붙잡고 있는 것을 원치 않아 현의 악기점 기타 교실에 등록해 주었습니다. 수강료는 한 달에 5~6백 위안, 싸구려 입문용 기타 한 대가 딸려 왔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9시 반까지 시내로 수업을 받으러 갔다가 11시가 넘어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무척 더운 여름이었지만 한 달 동안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빠지지 않았습니다. 악기점 사장님의 실력이 대단하진 않았지만 그는 감사해합니다. 그것이 그가 기타를 알게 된 시작이었으니까요.

허베이성의 고등학교 3년은 대입 부담이 커서 취미를 기를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갈 때만 인터넷으로 핑거스타일 앨범을 듣고, 당시 백금발이었던 천량 선생님의 영상을 따라 독학할 수 있었습니다. 3년 동안 바레 코드, 해머링·풀링·슬라이드, 하모닉스 같은 테크닉을 어설프게나마 익혔지만, 끝내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입 시험이 끝나자 아버지는 그를 다시 기타 교실에 등록시켰습니다. 이번 선생님은 조금 더 실력이 있었지만 가르치는 내용은 샤궈가 이미 독학한 것들이어서, 여름방학이 절반도 지나기 전에 수업을 그만두었습니다. 그해 열여덟 살의 여름, 버스는 기름차에서 전기차로 바뀌었고 그도 철부지 소년에서 예비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 동아리 박람회에서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 눈앞에서 천량 선생님의 〈무제〉를 연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멋있어서 진심으로 감탄했지만 속으로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저 사람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되지? 그래서 그 선배에게 먼저 위챗 친구 신청을 했고 둘은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선배는 그에게 아티피셜 하모닉스가 무엇인지, 팜 뮤트가 무엇인지, 태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진짜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출발점이었습니다.
선배의 도움으로 그는 단 13일 만에 〈무제〉를 완곡했습니다.

2019년 8월 3일, 그는 악기점에서 보조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수업 중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흐려져 학생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감기 때문에 눈앞에 별이 보이는 줄로만 알고 물로 눈을 씻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지만 다시 눈을 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 부모님과 함께 베이징의 병원을 찾았고, 망막박리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제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 …
처음 어둠과 마주했을 때 시간은 길고 견디기 힘들어 샤궈는 늘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래서 기타와 음악은 그에게 밥 먹고 물 마시는 것처럼 꼭 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기타를 치지 않으면 무언가 빠진 것 같았고, 기타를 잡으면 하루 종일도 칠 수 있었습니다.
샤궈가 연주한 왕예민 선생님의 〈양(陽)〉 커버. 기타: Kepma B1
2020년 1월, 그는 눈이 보일 때 배웠던 곡인 나카가와 스나오의 〈Clarence〉가 갑자기 떠올랐지만 일부 구간은 잊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기타 악보 사진을 보여 주며 악보 읽는 법을 가르쳤고, 어머니는 한 음 한 음 그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 곡을 다시 찾아냈습니다.
매일 이어지는 어둠도 그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곁과 도움으로 샤궈는 많은 새 곡을 익혔고 실력도 몰라보게 늘었습니다. 이후 기타 대회에도 도전해 여러 차례의 카마컵에서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창춘대학교 특수교육학원에 입학한 것은 샤궈에게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그는 옷 입기, 밥 먹기, 혼자 외출하기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고, 스크린 리더로 컴퓨터를 다루는 법과 Reaper로 음악을 만드는 법도 익혀, 우연히도 훗날 영상 제작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가 ‘잠금 해제’한 곳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서문에서 배달 음식을 받고, 육교 건너 제2식당에서 밥을 먹고, 더 먼 택배 보관소, 심지어 늦가을의 징웨탄까지.
2024년 설날, 친구가 한 시각장애 여성의 외출 영상을 보내며 너도 해 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했습니다. 사회 불안이 있는 성격이라 어색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어머니가 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유명해지려는 게 아니라 대학 생활의 추억을 남기자고요. 그래서 어머니가 돈을 내 2~3천 위안짜리 액션캠을 사 주었고, 그는 한동안 그 돈이 아까워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떻게 찍지? 어떻게 편집하지? 어떻게 올리지? 당시 샤궈에게는 모든 것이 난제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늘 자신과 겨루기를 좋아했습니다. 화면을 볼 수 없으니 귀로 편집했습니다. 촬영할 때 계속 혼잣말을 하고, 편집할 때 말이 없는 부분을 잘라 내며 상상과 기억으로 장면을 이어 붙였습니다. 스크린 리더의 도움을 받아 기억 속의 곡들로 배경음악을 넣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더듬어 전 과정을 익혀 나갔습니다.
영상을 올린 뒤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5월부터 그의 영상이 갑자기 많은 사람에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6월 19일, 식당에서 기숙사로 비틀비틀 돌아가는 그 영상에서 2,900만 명이 그와 함께 끝까지 걸었습니다.
2025년 1월 5일, 그는 빌리빌리 ‘100대 크리에이터’가 아니었음에도 “2024년 최우수 작품상 크리에이터”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영상에서 사람 사이의 진심과 가장 순수한 따뜻함을 보았고, 계속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부끄럽고도 감사하다고, 자신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이렇게 사랑받을 줄은 몰랐다고 말합니다.

2023년 11월, 샤궈는 다롄 안내견 기지에서 유바오를 데려왔습니다. 그의 프로필에는 “안내견 유바오의 새내기 형”이라는 소개가 한 줄 더해졌습니다. 유바오가 생긴 뒤 그는 마침내 “자유”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바오가 속도를 늦추면 앞에 계단이나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정한 속도로 걸으면 길이 막힘없다는 뜻입니다. 그는 “과장 없이 유바오는 내 눈”이라고 말합니다. 흰 지팡이를 리드줄로 바꾼 뒤 걸음이 빨라졌고 외출도 덜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유바오는 그와 함께 지하철과 비행기를 타고, 새집으로 이사하고, 도시와 도시를 함께 걸으며 더 넓은 지도를 열어 가고 있습니다.

문학 청년, 낙관적인 비관주의자. 그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말입니다.
그에게는 자작곡 〈차가운 소나무(冷松)〉와 〈네 눈 속의 반딧불〉이 있습니다. 멜로디가 밝고 경쾌해서 어둠 속에 있는 기타리스트의 곡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샤궈의 자작 핑거스타일 곡 〈차가운 소나무(冷松)〉 기타: Kepma B1
샤궈의 마음을 비추는 빛은 음악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정(情)’입니다. 가족과 친구는 물론 길에서 만나는 모든 낯선 사람까지 그를 감사하게 하고, 매일이 따뜻함과 사랑으로 가득하다고 느끼게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우리는 샤궈에게 물었습니다. 같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몸이든 마음이든)에게 한마디를 한다면 무엇이라고 하겠느냐고.
그는 말했습니다. 생명은 스스로 길을 찾는다고, 돌 틈의 작은 풀처럼.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살아갈 의미를 찾으면, 언젠가 다시 자신감을 되찾게 될 거라고.








